2015년 2월 13일 금요일

2014년 9월 런던 포토보이스 교육 참관기 2.


<PhotoVoice 참관기2>

-2박 3일간의 Photovoice 워크샵이 끝났다. 머리에 수 천 개의 수지침을 맞은 듯 아프면서도 시원한 묘한 기분이 밀려온다. 마침 더럼으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까지 3시간 남짓 남아 노트북을 열고 이 묘한 기분이 채 사라지기 전에 정리를 시도한다.

-첫 날은 사진찍기와 이미지가 갖는 의미를 느끼게 해준 날이었다면, 2일째는 실제 '참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하고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책임자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알아 보았다. 그 중 'Exploring Participation' 시간은 많은 논의 속에서 Participatory Photography에서 'participatory'가 과연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아래 제시된 7개의 단어의 의미와 그 차이들을 생각해보고 어떤 것이 더 큰 '참여'를 뜻하는지 순위를 매기는 작업이었다. 인류학과에 이야기하는 '참여관찰'은 이 중 어디에 가까울까 많은 고민과 반성을 해보았다.

Manipulation, Information, Education, Consultation, Involvement, Partnership, Empowerment

- 2일째 했던 체험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Identity를 드러내는 사진 한 장을 찍어와서 서로 공유하는 시간과 야외에서 한 Power Walk였다. 나 역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진을 무엇으로 할 지 매우 많은 고민을 했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경험 또한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난 길거리에 버려진 담뱃갑을 찍어 보여주며 연구자로서의 나의 관심사와 그 주제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때 찍은 사진을 첨부한다. Power Walk 또한 큰 영감을 준 간단하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각자 다른 배역을 쪽지로 부여받고 그 역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power'에 따라 진행자가 이야기하는 일들 중 자신이 '할 수 있다'면 앞으로 한 발짝 걷고, '할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서 있는 게임이었다. 이것은 각자 지닌 사회적 신분와 위치에 따라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각자가 직접 그래프 속 점이 되어 느끼는 시간이었다. 'vulnerable', 'voiceless'가 무엇을 뜻하는지 몸으로 확인하고, 그 자리에 서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멋진 경험이었다. 런던 빌딩 속 아늑한 공원의 경치는 덤이었다.

-2일째, PhotoVoice 프로그램 운영자가 참여자들을 모으고 워크샵을 진행할 때 가져야 할 능력과 역할, 태도에 대한 자유 토론이 있었다. 'facilitator'로서의 위치에서 가져야할 소양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 그 내용들을 이곳에 옮겨 본다. 어느 연구자든, 활동가든 항상 고민해야 할 사항들이다.

*Role/Responsibilities: Being informed about group & issue, Tailoring project to group in terms of culture and needs, Task management, In charge of people's well-being, Encouraging creativity
*Qualities/Attitueds: Good communicator, Adaptable, Well-trained, In control/self-control, manage conflict/group dynamics, Neutrality
*Challengers: Communication, Understanding participants, Not dictating outcomes, Remaining Neutral, Equal participation

-3일째, 마지막 날인 이 날은 주로 실무적인 일에 대해 논의를 했다. 참여자가 찍어 온 여러 사진 중 의미있는 사진을 함께 고르는 작업, 사진을 해석할 때 글을 써가며 해석하는 연습, 실제로 프로젝트의 Goal/Aims/Considerations를 짜보고 발표하는 연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여자에게 프로젝트에 참여와 이미지 사용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할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A sense of place'를 주제로 각자 가져온 20장의 사진 중 5장을 짝을 이루어 고르는 작업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사진 한 장 한 장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동일한 인물에 의해 찍힌 20장의 사진은 찍은 사람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었다. 또 한 번 사진이 서로를 알고 소통하는데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3일째, 서로의 어색함을 깨고, 좀 더 가까워지는 재밌는 시간도 있었다. 졸리는 틈을 따 모두 가운데 원을 그리고 선 채 고개는 아래를 향한 후 한 명이 '원, 투, 쓰리'를 세고, 마지막 '쓰리'를 외칠 때 모두 고개를 들어 딱 한 명만 쳐다보는 게임이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뒤로 빠지고, 남은 사람들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마지막에 살아 남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매우 짧은 시간에 진행할 수 있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서로 대놓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볼 수 있는 유쾌한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Eye Contact'이라 불렸다. 또 다른 게임도 있었다. 게임이라기 보다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성원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서로 다른 차이(국적, 인종, 성별, 나이, 문화, 언어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대화의 시간이었다. 3-4명씩 앉아 서로 매우 의미있는 공통점 4개를 찾는 활동이었다. 자연히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미쳐 보지 못했던, 당연히 공유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던 점들을 발견하게 됐다.


-마지막 소감: 모든 순간이 소중하기에,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생각이 나는 대로 적다보니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진심으로 참여했던 모든 순간들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워크샵의 방식도, 그 내용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Content와 Context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느낌. 이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들고 직접 경험하는 게 어려운지 잘 알기에 정말 값진 시간이었다. '참여'에 대해 서로 '참여'하며 진행된 워크샵은 앞으로 어떻게 강연과 수업, 그리고 워크샵을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첫 날 수업 시작하자마자 함께 정했던 워크샵 기간 중 서로 지켜야할 주의사항인 Ground Rules을 옮기는 것으로 소감을 마칠까 한다. 그 내용은 사실 모든 사회 생활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 연구에서도, 한국의 교육환경(대학원 포함)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Ground Rules>
: Respectful, Listening, Valuing Equity, Sharing Responsibilities, Phone Silent, No Texting, Punctuality, Encouraging Participation, Spirit of Confidentiality



-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관련 사이트, 논문, 서적을 몇 개 적어본다.

<Photovoice 관련 사이트>
www.photovoice.org

<관련 논문>
1) Caroline Wang & Mary Ann Burris. 1994. "Empowerment through Photo Novella: Portraits of Participation", Health Education & Behavior. Vol.21(2); 171-186
2) Caroline Wang et al. 1998. "Photovoice as a participatory health promotion strategy", Health Promotion International. Vol.13(1); 75-86
3) Caroline Wang. 1999. "Photovoice: A Participatory Action Research Strategy Applied to Women's Health", Journal of Women's Health. Vol.8(2); 185-192

<관련 서적>
1) "Doing Visual Research" - Claudia Mitchell (2011)
2) "Doing Visual Ethnography"(2nd edt) - Sarah Pink (2012)







2014년 9월 런던 포토보이스 교육 참석기 1.


I am in London to take part in 'PhotoVoice 3 day Training Workshop'.

-'Photovoice' is a participatory research strategy commonly implented in health research as a mechanism for personal and community change. In 1994, it was first introduced as "Photo Novella" by Wang & Burris.

-"Photo Novella does not entrust cameras to health specialists, policymakers, or professional photographers, but puts them in the hands of children, rural women, grassroots workers, and other constituents with little access to those who make decisions over their lives."

-Three theoretical frameworks of PhotoVoice are 1) Empowerment education, 2) Feminist theory, 3) Documentary photography.

오늘 아침 더럼에서 새벽 5시 기차를 타고 런던에 왔다. PhotoVoice라는 Participatory Action Research(PAR) 연구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3일간 매일 아침 9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한국으로 출국하기 2주 가량 남은 시점에 300파운드나 하는 유료 프로그램(물론, 인류학과에서 지원을 조금 해주지만)을 듣고자 한 것은 포토보이스가 지닌 엄청난 매력때문이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에게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포토보이스의 목적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워크샵 첫날. 새벽 세 시에 기상을 해 5시 기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한 후 9시 반부터 교육에 참여했다. 나를 포함해 총 13명의 수강생이 있었고, 미국, 캐나다, 폴란드, 멕시코, 영국, 한국 등 출신 지역도 다양했고, 교수에서부터 활동가, 학생까지 직업도 다양했다. 모두들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답하고 표현하는 열성을 보였고, 그 속에서 함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이름을 빨리 외우기 위해 공을 던지면서 이름을 맞추는 게임도 하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그룹을 지어 열딘 논의를 하기도 했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있던 나에게는 낯설고 신선한 방식이었다. 이것은 지난 1년간 더럼 대학에서 대학원생들과 하던 방식과도 조금은 달랐다. 실제 '참여'하는 정도가 다른 수업과는 너무나 달랐다. 교육을 받았다기보다는 함께 교육을 해나갔다는, 내용을 함께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가장 인상적인 시간은 점심 시간에 카메라를 주고 5가지 주제에 대한 'Trust Hunt'를 했을 때다. 'Something that's your favourite colour', 'A pattern', 'A portrait', 'Something round', 'A detail you think no one else will have noticed' - 이 다섯가지 주제에 대해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 그 중 한 가지씩을 골라 서로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홀로 런던 시내 한 복판을 돌면서 주변환경에 대해 촉각을 기울이며, 그 장소가 지닐 수 있는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도 찍는 이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짧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모두 모여 13장의 사진을 보면서 서로 웃고 감탄하며, 각자의 해석을 풀어 놓았다. 이미지가 단순히 텍스트의 보조자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있는 민족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시간은 Photo Dialogue 시간으로 처음보는 사진들을 가지고 그룹을 지어 함께 사진들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의 해석을 들었다. 다양한 사진 중에 'Hope'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 'Fear'를 떠오르게 하는 사진을 고르는 작업은 정말 각자가 지닌 경험의 차이가 같은 이미지를 두고 얼마나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지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잠이 부족해 힘든 하루였지만, 모두들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는 모습 속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하루였다. Participatory Photography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삼삼오오 모여 만든 우리들만의 정의를 보며 곰곰히 많은 생각을 한 하루였다. 사진으로 그 기록을 남겨본다.


Give the voice to the voiceless!!





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퇴근 길 가산디지털단지, 그리고 남겨진 휴게실 풍경

유난히도 추웠다. 오후 6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퇴근 시간.
가산디지털단지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급하다. 옷깃도 높다.
그 인파를 거슬러 건물 안 휴게실로 향했다.
건물 안 휴게실은 텅비어 있고, 누군가에게 전쟁같은 하루였음을 느끼게 하는 꽁초만이 가득하다. 저녁 6시. 휴게실 앞 커피 자판기엔 오로지 X만이 빨갛게 남아 있다.
억울한 하루를 커피 한 잔의 온기에 기대어 버티었을 그/그녀. ...
영하 8도의 칼바람 속 잰걸음. 부디 돌아갈 집 아랫목이 따뜻하게 반기기를 바랜다.





신경숙의 '외딴방'

소설의, 아니 작가 신경숙의 10대 후반의 무대였던 구로, 아니 디지털단지에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아니 차마 끝내지 못했던 [외딴방]과의 마지막을 고했다.
1970년대 구로 여공의 삶 속에서 2014년 디지털 여공의 현재를 비춰보려 찾았다.
그녀의 소설은 첫 경험. 아련했다. 내 어머니의 그 때 그 가라던 손짓. 내 아버지의 그 때 그 멋적었던 헛웃음.
신경숙의 [외딴방]은 과거의 나를 버겁게 불러 일으켰다. 차분하게 차츰 정신이 흐려졌다.
...
"보건체조
산업역군
군대내무반
도시로 나오니 하층민
노조가입 안 돼
납중독
저임금
공순이
이런 게 바로 수치야
타미나 로션
시골은 자연이 상처이지만, 도시는 사람이 상처다
헤겔
남자는 아이를 떼라
똑같은 자세로 일어난다"
........
읽으며 적은 단어와 문장들....
책을 통해 알았다. 산업역군으로 포장된, 아니 삭제된 10대 소녀들의 열망과 절망, 그리고 욕망까지. 그들은 겉치장만 여대생과 같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꿈과 삶이 같았다. 그걸 역사가 마치 없었던 것인양 삭제했다. 빛바랜 칭송으로. [외딴방]은 그걸 느끼게 해준 죽비다. 억눌렀던 내 어린 과거와 함께 공명하며.
읽으면서 한 참을 책을 놓게 만들었던 문장을 옮겨본다.
"영원히 나를 버리지 않을 내 피붙이들의 숨소리가 내 가슴 속으로 가득 들어차면 그때야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2권, 231페이지)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해저문 퇴근길 디지털3단지 풍경

 
 
최근에 구로근로자복지센터를 방문한 후 콜센터 여성노동자의 노동경험을 연구한 S활동가와 '노동자의 미래'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L을 만났다. 그리고, 오늘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서울근로자건강센터를 방문해 센터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오는 저녁 길은 매우 쌀쌀했다. 저녁 6시쯤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 속에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모두들 쌀쌀한 바람에 몸이 얼은 듯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지친 몸들을 옮기고 있었다. 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걸으면 너무 힘들고 외로운 이 길. 혼자 걷는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이 길. 그렇지만, 이렇게나 많은 군중들이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물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따뜻하게 눈인사를 건네지도 않지만, 함께 걸어가고 있기에 그렇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학교 대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던 학생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혼자가 아니기에 외롭지 않았던 그 시절. 지금 이곳에서 또 다시 연장이다.
 
 
인파를 헤치고 난 이전에 찾아두었던 L 정보통신 회사를 둘러보고자 발걸음을 퇴근하는 인파와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사람들의 기합소리가 공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이 환한 조명 아래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주변에는 아파트형 공장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이런 빌딩 밀림 속에 이런 경기장이 있을 줄은 상상치 못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경기장 반대편에 걸려 있는 플랜카드에 눈길이 더 갔다.
"각종 근로기준법 위반 신고하세요!"
낮에 '노동자의 미래'에서 활동가를 만나 들었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떠올랐다. 활동가 이야기에 의하면 아주 어렵게 전화를 한 노동자도 열에 일곱은 자신이 속한 회사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절대 본인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도 우리가 모르는 회사의 압박에 대한 예기불안으로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저 플랜카드는 그래서 더욱 쓸쓸해 보였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축구를 하는 저들은 어딘가에 소속된 노동자일텐데. 하지만 시선은 플랜카드가 아닌 축구공에 가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이제 선택의 문제가 된 건 아닌지.


 찾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전히 저녁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은 층들이 많았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흡연구역을 찾아냈다. 도로와 가까운 쪽이니 여성보다는 주로 남성들이 이용하는 흡연구역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곳에 놓인 두 개의 재떨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동그란 도너츠를 연상시키는 재떨이 사진은 이 곳의 흡연 정도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이 지역에는 특히 외부에 노출된 흡연구역은 대부분 큰 재떨이가 있는 동시에 주로 남성흡연자들로 가득하다. 반면에, 여성흡연자는 실제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재떨이의 꽁초들이 말해주듯 수많은 남성들이 이곳에서 흡연의 사회적 유용성과 감정조절 및 휴식의 도구로서의 상징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었다.


 처음 L정보통신을 찾아가고자 했던 것은 인터넷 구직광고에서 새로운 상담사를 뽑는 광고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담사 지원자는 별관으로 오라고 안내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찾아가니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가는 철조망이 세워져 있었다. 이러한 풍경은 사실 주변 풍경과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한쪽 도로벽은 금발의 외국여성이 자신의 옷을 자신감 있게 보여주는 광고판이었다. 그런데, 그 바로 앞 도로에는 '소액전문대출'이라는 문구가 찍힌 명함형 광고지가 뿌려져 있었다. 묘한 대비가 되는 풍경들이었다. 즉,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있더라도 노동자들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고3이 마치 의무처럼 공부를 하듯, 이어가고 있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기존의 대출 빚 혹은 카드값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느껴졌다. 그리고, 돈을 모으면, 말 그대로  꿈꾸던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을 거라는 미련에 투자한다. 


2014년 10월 5일 일요일

가리봉시장과 디지털단지, 과거와 현재의 공존


10월 3일. 개천절 공휴일을 맞아 서울디지털단지(나는 습관적으로 '구로공단'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서울디지털단지'로 부르고, 구로디지털단지역과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중심으로 나뉘기 때문에 줄여서 '구디', '가디'로 부른단다. 예를 들면, "나 지금 가디 쪽에 있어")에 두 번째 방문을 했다. 오늘의 목표는 가리봉동시장과 수출의 다리였다.
 

 
 
가리봉시장은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전날 '디지털구로문화대전(guro.grandculture.net)'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가지 흥미로운 자료들을 접한 후 사전 정보를 얻고 출발했다. 남구로역에 내려 처음으로 눈길을 끈 것은 지하철 시간표였다. 첫 차와 막차 사이의 시간 간격이 채 6시간도 안됐다.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이곳에서 일하며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한 번 떠올려 보았다. 아침 출근길에 쏟아지듯 사람들이 밀려나오는 이곳 지하철 역 풍경을 언젠가 꼭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래 어제 본 디지털구로문화대전에 나온 동영상 속 저 장면을 직접 보고 싶다.
 
 


 



남구로역에서 나와 길을 내려오면서 내 시선을 끈 곳은 헌 옷과 신발을 파는 곳이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모두 공장 작업복과 안전화들이다. 이곳이 첨단화산업을 육성하기 전 그 유명한 구로공단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IT에 밀려 주인을 잃은 옷과 신발들이 언제 올 지 모를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가리봉시장에 거의 다달았을 즈음, 이곳이 중국교포들이 밀집한 곳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현수막을 보았다. 이제 가리봉동에는 주민 40%가 화교라 한다. 불법이주민이 아니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 줄 생명과도 같은 신분증은 이곳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신분증을 발급하는 센터 앞에는 흥미로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담배꽁초는 쓰레기통에 버리세요"라는 빨간 색 글씨는 내 눈을 한 눈에 사로잡았다. 도대체 왜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는지 의아하했지만, 잠시 후 그 이유를 알았다. 근처에 있는 공중휴지통 주변으로 수많은 꽁초들이 버려져 있었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것은 그 꽁초들 사이에 돼지 족발 뼈로 보이는 음식물 쓰레기도 함께 버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잠시 후 들린 가리봉시장에는 버려지기 전에 어떤 모습의 음식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참을 담배꽁초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지나가는 행인들이 좀 특이하다는 듯 쳐다 보았다. 그들이 내가 신기하듯 나 역시 이 장면을 한참이나 흥미롭게 관찰했다. 아래에 있는 편의점 앞 가산디지털단지내 재떨이와는 사뭇 다르다.
 
 
 
 
 
 
 


가리봉시장은 거의 모든 상가 간판이 중국어로 쓰여져 있다. 정말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순간 혼돈될 정도였다.

시장 골목을 안 쪽에 들어가니 고물상이 있었다. '파지'는 110원, '옷'은 450원, '물랭이'는 200원이었다. 고물상 앞에는 광고전단지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선원모집', '간병인 모집'. 중국교포를 특별우대한다는 선원모집 광고가 눈길을 끈다. 이곳에 모여 사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또 어떤 일들을 할 수 밖에 없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래에서 볼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본 광고물과 전혀 다르다.


고물상을 지나고 있을 때 비행기 소음이 들여 하늘을 보니 정말 비행기가 날아 가고 있었다. 사실 기분이 묘했다. 이 허름한 시장 골목 안 풍경과 거미줄 같은 전선줄 사이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조금 걷다보니 전파상 같은 가게가 있었다. 앞에 전시한 물품들이 고물인지, 전시품인지 도저히 가늠이 안될 정도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먼지가 쌓인지 너무 오래돼 보이는 리모콘을 보며 이 골목의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쌓인 먼지만큼, 그 먼지에 무심해진 가게 주인의 무력함만큼 이곳 가리봉시장은 과거의 영광에서 많이 멀어져 있는 듯 보였다. 




골목 안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담배광고판이었는데, 그 밑에 콜센타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나중에 적혀 있는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한국담배 판매인회 중앙회' 홈페이지였다. 이곳 콜센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흡연율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나가는 길에 또 다시 담배 경고문을 보았다. "담배 꽁초 버리다 단속원에 걸리면, 벌금 삼 만원 징수됨"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위에는 경찰서에서 붙인 안내문이 있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에 대한 변경 사항을 알려주는 안내문이었는데 중국어로도 쓰여져 있었다. 이 가게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중국식 빠찡꼬 가게였다.

 
 
가리봉시장 나오는 길에 있는 여성안심귀갓길 안내문. 스마트폰을 이용한 최신식 방법.

 
꽃게잡이 선원을 구하는 전단지와 카드게임 PC방 전단지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가리봉시장을 나와 가산디지털단지로 향하는 길에 있는 약국과 그 앞 공중휴지통. 금연초 광고와 주변이 깨끗한 휴지통. 가리봉시장에서 본 풍경과 사뭇 다르다.




디지털단지오거리는 가리봉시장과 가산디지털단지를 완전히 가르는 기준점이다. 이곳을 지나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골프웨어 할인행사를 하는 상점 앞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은 과거의 기억에 빠져 있던 나를 깨웠다.


 
이곳은 일단 거대한 패션몰의 집합소였다. 공휴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다. 그리고 한 아울렛 앞에서는 부당해고에 맞서 항의하는 노조원들의 외침도 있었다.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아울렛 앞 버스정류장에 붙은 금연버스정류소 안내문.


드디어 보이는 '수출의 다리'
 
디지털단지내 건물에서 본 '담배 판매' 광고문. 가리봉시장의 전통적 광고판과 달리 저 높은 빌딩 유리창에 붙어 있다.



수출의 다리 밑 풍경. 뜻을 알 수 없는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수출의 다리 위에 올라 거닐며 찍은 사진. 서울을 'Soul of Asia'로 소개한 다리 위 문구가 인상적이다.


 
다리 위를 걸어 가니 노래방 광고 전단물이 보인다. 전화만 주면 즉시 모시러 오는 노래방. 가리봉시장과 다른 세상이다.

 
수출의 다리를 지나 내려오면 금천구에서 운영하는 가산문화센터와 청소년 쉼터가 나온다.

 
청소년쉼터에 붙어 있는 누리/한별단/아람단 홍보물. '효로 넘처나는 청소년'이라는 문구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모델은 아이돌 그룹. 청소년 쉼터에 온 가출 청소년들에게 홍보하는 것일까?

 
가리봉시장에서 본 전단지와 달리 이곳에는 회생/파산에 대한 상담, 각종 문제들에 대한 종교적 치유법 광고, 신축 고시텔 광고 등이 붙어 있었다. 전단지만 보아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소위 '가디'라 불리는 곳에 진입하니, 거대한 공장형 아파트식 사업장이 즐비했다. 그 앞으로는 친환경 전기자전거가 전시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건 이 건물 한 켠에 있는 편의점 휴지통이었다. 특히, 휴지통 위에 놓인 뚝배기 재떨이는 이곳에서 흡연자들이 놓인 위치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향후 좀 더 깊이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