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퇴근 길 가산디지털단지, 그리고 남겨진 휴게실 풍경

유난히도 추웠다. 오후 6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퇴근 시간.
가산디지털단지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급하다. 옷깃도 높다.
그 인파를 거슬러 건물 안 휴게실로 향했다.
건물 안 휴게실은 텅비어 있고, 누군가에게 전쟁같은 하루였음을 느끼게 하는 꽁초만이 가득하다. 저녁 6시. 휴게실 앞 커피 자판기엔 오로지 X만이 빨갛게 남아 있다.
억울한 하루를 커피 한 잔의 온기에 기대어 버티었을 그/그녀. ...
영하 8도의 칼바람 속 잰걸음. 부디 돌아갈 집 아랫목이 따뜻하게 반기기를 바랜다.





신경숙의 '외딴방'

소설의, 아니 작가 신경숙의 10대 후반의 무대였던 구로, 아니 디지털단지에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아니 차마 끝내지 못했던 [외딴방]과의 마지막을 고했다.
1970년대 구로 여공의 삶 속에서 2014년 디지털 여공의 현재를 비춰보려 찾았다.
그녀의 소설은 첫 경험. 아련했다. 내 어머니의 그 때 그 가라던 손짓. 내 아버지의 그 때 그 멋적었던 헛웃음.
신경숙의 [외딴방]은 과거의 나를 버겁게 불러 일으켰다. 차분하게 차츰 정신이 흐려졌다.
...
"보건체조
산업역군
군대내무반
도시로 나오니 하층민
노조가입 안 돼
납중독
저임금
공순이
이런 게 바로 수치야
타미나 로션
시골은 자연이 상처이지만, 도시는 사람이 상처다
헤겔
남자는 아이를 떼라
똑같은 자세로 일어난다"
........
읽으며 적은 단어와 문장들....
책을 통해 알았다. 산업역군으로 포장된, 아니 삭제된 10대 소녀들의 열망과 절망, 그리고 욕망까지. 그들은 겉치장만 여대생과 같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꿈과 삶이 같았다. 그걸 역사가 마치 없었던 것인양 삭제했다. 빛바랜 칭송으로. [외딴방]은 그걸 느끼게 해준 죽비다. 억눌렀던 내 어린 과거와 함께 공명하며.
읽으면서 한 참을 책을 놓게 만들었던 문장을 옮겨본다.
"영원히 나를 버리지 않을 내 피붙이들의 숨소리가 내 가슴 속으로 가득 들어차면 그때야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2권, 231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