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7호선을 타고 가는 길은 사실 좀 어색했다. 넓은 지하철 안 공간도, 지하철 역 안 넓은 통로도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불필요하게 넓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마치 누구에게 '우리는 넓은 도로와 현대식 공간을 충분히 개발한 문명국'이라고 보여주려는 듯 왠지 커 보였다. 어린 아이가 일찍 성인이 되고 싶어 부모 옷을 나름 멋나게 입은 느낌이라고 해야할 지. 묘한 느낌을 간직한 채 목적지인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도착했다.
처음이었다. 서울에 적어도 5년 이상을 거주했지만, 가산디지털단지역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서울에 상경한 시골아이마냥 높디 높은 건물들을 향해 고개가 내려올 줄 몰랐다. 우선, 목적지인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을 향해 2번 출구로 나왔다. 나오면서 출구 표지판을 보며 물끄러미 서 있었다.
가산디지털단지. 디지털. 1964년에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 조성법'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로 조성된 곳, 구로공단. 30여년 동안 10대, 20대 여공들의 땀과 꿈이 스며든 곳. 그 곳을 처음 도착해 마주한 단어는 '디지털'. 관광객을 위해 친절히 일본어, 중국어, 영어가 적혀 있는 곳. 자료를 찾아보니 9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산업인 섬유, 조립 금속업체들이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한국이 아닌 동남아, 중국 등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97년 '구로산업단지 첨단화 계획'이 시작되었고, 30여년을 이어온 구로공단의 역사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개명되었단다. 이제 소위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린다고, 혹은 그렇다고 홍보되는 곳이 되었다.
지하철역 입구를 나와 조금 걸으니, 그래도 나에게 익숙한 장면, 무리지어 흡연을 하는 남성들이 보였다. 건물 밖 벤치 앞에 마련된 거대한 철재 재떨이 앞에 삼삼오오 남자 직원들이 식후땡 담배를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당연히 여성은 없다. 그렇다고 여성 직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에 여성들이 일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현수막이 보였다. '여성안심 동행 귀가 서비스'. 이곳에서 어두워진 밤길을 지나가야하는 여성 직원들이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현수막이었다. 구청에서 많은 부분을 신경쓰는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그간 도로변을 빼곡하게 점령한 술집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목소리들이 얼마나 많은 여성 직장인들의 귀가길을 두려움에 떨게 했을지 짐작케 했다. 여성이 안심하고 대로변을 걸을 수 없는 밤이 이곳에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나 싶었다. 현수막 앞에 높이 쌓여 있는 빈 박스 더미들과 묘하게 대비되는 게 안타까운 느낌을 들게 했다. 사진에 나오지 않았지만, 한 할머니께서 열심히 거리의 종이들을 수거하고 있었기때문이다. 젊은 여성의 밤길이 보호되지 못하는 곳, 그리고 나이 든 여성의 남은 인생길을 거리로 내몰며 보호하지 못하는 곳.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으로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은 가산디지털단지역 2번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이층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생활체험관은 '가리봉상회'라는 옛 구멍가게까지 재현해 놓았다. 눈길을 끄는 건 색이 바랜 담배 광고판이었다. '담배'라는 문구는 색이 바래 글자가 불분명하지만 'GIGARETTES'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 오래된 간판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담배' 글자는 분명 빨간색이었다. 흰색 바탕에 빨간색. 당시에는 담배가 그 만큼 '주목'되어야만 하는 글자였나 싶다. 그리고 하필 왜 이 구멍가게의 이름은 '가리봉상회'일까. 구로공단의 낙후된 이미지와 '가리봉'이 가져오는 발음상의 우스꽝스러움이 잘 조합되서일까? '가리봉'은 낙후된 공단의 이미지와 가난한 여공들의 삶을 희화화하는 상징적 표어가 된 것 같다. 그저 과거를 재현하면서 왜 '가리봉상회'로 이름을 지었을까 의문이 계속 남았다.
산업역군. Industrial soldiers. 당시에는 여공들을 이렇게 불렀다 한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재건을 위해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표어 속에서 여공들의 어깨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국민의 '의무'로 인식하게 만든 60, 70년대. 찌든 시골의 삶도, 아들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도 여공들을 군대와 같은 작업장과 기숙사로 몰아 넣었다. 사진 속 여공들의 모습은 설령 사진을 위해 꾸며진 모습이라 할 지라도 청춘의 자유보다는 군대의 통제에 더 가까운 듯 하다. 특히, 윗 서랍에는 옷을 넣고 아래 서랍은 아래로 당겨 간이 책상으로 사용하게 만든 모습은 전형적인 군대 내무반을 떠오르게 만든다.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에는 다양한 사진들과 옛 기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당시 '닭장집'이라고 불린 여공들이 머물던 월세방 골목 사진이 있다. 2평도 채 안되는 곳에서 3-4명씩 함께 거주하고, 그래서 한 집에 무려 60여명이 머물던 곳. 2평도 채 안되는 '닭장집' 안에는 보통 비키니옷장, 3단옷장, 흑백 텔레비전, 쓰레기통 등이 놓여 있었고, 따라서 키가 150cm 정도 되는 여성 3명이 눕기에 부족할 정도라고 한다. 그 좁디 좁은 닭장집은 이제 미로와 같은 구조를 한 주택으로 변모되었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몸을 비틀어 공간에 끼어 맞쳐야 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전시된 여러 사진 중 집과 관련해 눈길을 끈 것은 다 타고 재만 남은 연탄들이 탑을 이룬 사진이었다. 나 또한 어렸을 적 연탄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작은 대문 앞에 저렇게 많은 연탄이 쌓여 있는 모습은 낯설었다. 저 연탄 하나하나에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한 밤의 추위 속에서 버텼겠구나 하는 감상과 함께 밀폐된 작은 공간에 몸을 녺여주는 연탄이 쉽사리 죽음의 가스로 전락할 수 있다는 가혹한 현실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래서, 담벼락 밑 연탄재들 하나하나에는 젊음이 소진된 우울한 가슴들이 깃들여 있는듯 했다. 체험관 안에 적힌 아래의 시 앞에 발걸음이 오래 머물렀다.
김사이 [초록눈] 부분
가리봉오거리 가는 공장들 담 아랜
우울한 가슴들이 다 모였다
담벼락에 달라붙어 눌은 먼지들 빈 담뱃갑
썩은 나뭇잎 비닐봉지 팔다리는 물론, 머리 없는 나무들
한겨울 매일같이 옷깃 세우고 지나다닌 길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사는 게 그러려니 하면서
총체적 관리. 명절에 한복을 포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세련된 복장으로 귀성길 버스에 오르는 모습. 이 모습을 보면서 '총체적 관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체험관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당시 각각의 회사는 단순히 복지 차원에서 귀성길 차량을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회사측은 명절을 싫어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귀성길에 만난, 혹은 고향에 가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자신의 월급이 상대적으로 어떠한지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만일 적을 경우 회사를 옮기는 일이 잦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귀성길 버스는 오로지 직원들이 같은 회사 동료들과 어울리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휴가까지 관리하는 모습. 한편, 당시에는 '검신(檢身)' 혹은 '센타'라는 여공들에 대한 몸 수색도 상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퇴근 길에 회사의 제품을 몸에 숨기고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되었다는 센타는 단순한 보안 차원의 검색을 넘어 비인간적인 행위들이었다. 여공의 몸은 이렇게 철저히 관리되고 감시되며, 통제되었다.
이곳에는 흥미로운 사진이 걸려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현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이 놓여 있다. 구로동 수출산업공업단지의 육성을 위해 손수 공장에 들려 여공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직접 격려까지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젊었을 적 박근혜 대통령의 상류층 의복과 남성용 군복을 연상케하는 한 여성노동자의 작업복이 보여주는 묘한 대비였다. 여공을 산업역군이라 부른 것은 단순히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복을 통해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체험관 안에는 당시 여공들이 살던 '닭장집'을 작은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그들의 삶이 공간이 이들의 삶에 어떤 가치관을 심어 주었을까 궁금했다. 좁고 닫힌 공간은 미래에 대한 이들의 기대, 현실에 대한 대응 등 모든 것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밝고 큰 꿈을 꾸기엔 너무나 협소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각성하게 되고, 목소리를 내게 된 여공들의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머리에 단결의 띠를 두르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힘껏 부르짓는 모습이었다. 이전 사진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22세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화염 속에 생을 마친 이후 그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시됐던 열악한 노동현실이 정치적 관심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구로공단의 여공들 역시 70년대 시민단체, 도시산업선교회 등을 통해 자신들의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유신 정권이 물러난 80년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여공들의 자체적인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실행으로 표출되었다. 이 동맹파업은 '6.25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체험관의 벽 곳곳에는 이곳에 방문한 학생들이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일 윗 그림은 초등학생의 그림이다. '수출'이라 찍힌 트럭, 자신이 만든 예쁜 드레스를 들고 있는 웃는 모습의 여공, 밝은 얼굴 표정과 대비되는 가는 선이 뒤엉킨 어두운 바탕. 가는 펜으로 마구 체워진 어지러운 바탕이 웃고 있는 인물들의 얼굴과 너무 대조되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그림은 중학생의 그림이다. 다친 손가락을 감고 있는 밴드와 투박한 두 손. 그 두 손이 정성스럽게 떠받치고 있는 것은 미래를 표상하는 최첨단 '디지털' 건물들이다. 뚜렷이 구분된 과거와 미래. 그 중간에 거친 두 손이 들어갈 수 있는 미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가의 도로에 걸려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과거를 살고 있는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까? 초등학생의 그림과 달리 건물들 뒤로 오색찬란한 무지개 빛깔들을 그려 넣은 것은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다. 마지막 그림은 고등학생의 작품이다. 만화와도 같은 이 그림은 경찰관을 연상케하는 제복을 입은 인물과 미싱을 돌리며 눈물을 흘리는 두 인물의 대비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제복을 입은 인물의 손에 든 것은 '수학' 책이다. 제복을 입은 인물이 미싱을 돌리는 인물과 아는 사이라면, 그렇다면 상상컨대 공부를 해서 출세를 한 오빠 혹은 남동생,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공장에서 돈을 벌어야만 했던 여동생 혹은 누나. 이들이 남매 관계이든, 친구관계이든 어떻든지 간에 여공의 눈물로 이 그림은 시선을 붙잡기 충분했다. 어떠한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배경이 공장 안이 아니라 공장 밖 차가 보이는 도로변이라는 것도 인상적이다. 여공의 삶은 감출 곳 없이 만천하에 노출되고 그 부끄러움은 숨길 곳이 없다. 왼쪽 구석에 놓인 가발 쓴 마네킹 얼굴 두 개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인듯 보여 슬프다. 청소년들의 눈에 비친 부모세대의 자화상은 이러했다.
체험관 2층에 가면 구로공단과 관련된 기록물을 틀어준다. 그리고 그 뒤엔 1977년 3월 21일 '제1회 수출의 날'을 기념하는 '오백만불 수출의 탑' 이 여공 모형과 함께 재현돼 있다. 이곳은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란다. 마지막 관람 장소인 이곳에서 난 기념 사진보다는 한 쪽 벽에 쓰여진 시인 김사이의 '사랑은 어디에서 우는가'에 시간을 뺏겼다. 한 참을 되내이며 읽어보았다. 어디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구가 없었다. '삶의 문턱에서 허덕거린다', '선과 악이 날마다 쌈박질하며', '달아나려 매번 자기를 죽이면서도 눈을 드는', '불륜의 씨앗이 작은 방죽처럼 둥그렇게 모여 있는 닭장촌', '가로등 불빛에 타죽어 가는 날벌레 목숨', '얼룩을 감추기 위해 더워도 옷을 벗지 않는'... 그리고 '나 도망가다 멈춰 선 그곳'. 제목을 왜 '사랑은 어디에서 우는가'로 했을까 끊임없이 되내여봤다. 도망가는 발길을 멈추게 한 울음소리. 그게 사랑이었나 보다. 그곳에 머문.
김사이 [사랑은 어디에서 우는가]
재개발도 안 되고 철거만 가능하다는 곳
삶이 문턱에서 허덕거린다
햇살은 아무것이나 붙들어 들어갔다 뺐다 하고
선과 악이 날마다 쌈박질하며
그 속으로 더욱 궁둥이를 들이밀고
달아나려 매번 자기를 죽이면서도 눈을 드는
내 바닥 불륜의 씨앗이 작은 방죽처럼 둥그렇게 모여 있는
닭장촌, 정착지도 모르고 날아들었다가
가로등 불빛에 타죽어 가는 날벌레 목숨 같은
오누이가 사랑을 하고 사촌오빠가 누이를 범해 애를 낳는 그곳
온몸 짙푸른 얼룩을 감추기 위해 더워도 옷을 벗지 않는
엄마가 얇은 시멘트 벽 옆집 남자랑 도망가 없어도
어른이 되어가는 그곳
수많은 세대들이 서너 개의 공동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그곳
문밖에 버려진 작은 화초들, 으깨진 보도블록에서 솟아나는 풀들
바닥 틈 속에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간혹 보일 듯 말듯 한 꽃도 토해놓고
나 도망가다 멈춰 선 그곳